죽고 나서야 1900억에 팔린 그림, 인생이란 참...

  • 04/12/2018
  • By PerthInside (203.220.***.***)
  • 18,840 Views

[그림의 말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가난하지만 진실했던 사랑

 

미술작품 한 점을 독자와 함께 감상하며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미술전문가의 입장보다는 관람객 입장에서 그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1cc2e762ddcf5dba71006e8859e79c8c_1543877
▲  잔 에뷔테른, 배경에 문이 있는 풍경(모딜리아니, 1919~1920, 개인소장) 

왼쪽으로 살짝 기울인 길쭉한 얼굴, 애수 어린 표정, 가늘고 긴 목, 아몬드 모양에 눈동자 없는 공허한 눈, 둥글게 늘어진 어깨가 인상적이다. 붉은색과 짙은 청색, 그리고 톤다운된 노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에 살짝 기울인 자세가 다소곳하게 느껴지는 이 그림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가 그린 '잔 에뷔테른-배경에 문이 있는 풍경'이다. 치마 아래 배가 불러있는 이 그림은 잔이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의 모습이다. 

어떤 그림은 눈의 높낮이가 다르고, 또 어떤 그림은 한쪽 눈에만 동공이 있기도 하고, 두 눈이 다 동공이 없기도 하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그를 두고 '그가 모델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심리 분석가들이 있다. 그렇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나 외로움을 그때그때 그가 느끼는 대로 표현한 것 아닐까. 그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저주받은 사람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북부의 리보르노에서 유대계 가문의 네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해 늑막염, 폐결핵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던 그는 일찍이 학업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렸다. 1898년 이탈리아의 풍경화가 굴리엘모 미켈리에게, 1902년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조반니 파토리에게, 다음 해 베네치아로 가서 1905년까지 공부했다. 

1906년, 22살인 그는 드디어 예술가들의 성지인 파리에 합류했다. 그는 '모디'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발음상 프랑스어로 '저주받은 사람'이란 의미와 같다. 마치 그의 운명처럼. 서양 미술사상 가장 잘생긴 화가로 손꼽히는 그가 사랑과 자유의 상징인 몽마르트르에 둥지를 틀었으니 스캔들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많은 여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그에게 쏟아졌다.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인체소묘와 유화를 공부하며 당시 입체파를 이끌던 피카소 등 여러 예술가와 친분을 나눴다. 폴 세잔의 그림에 충격을 받고는 화풍에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아방가르드한 작품들이 대세인 세상에서 그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사람을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내밀한 정서까지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 열정이 매번 초상화 앞에서 붓을 잡게 했다. 이 무렵까지 그가 그린 그림들의 인체 비례는 정상적이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가난은 그를 또 한 번 변화시킨다. 

1909년 그는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기고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와 교류하며 조각에 매료된다. 특히 고대 에투르스크 조각과 아프리카 원시조각에 심취해 특유의 길쭉한 석조 두상을 만들었다. 5년 동안 3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나 비싼 재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작업 중에 발생하는 먼지가 결핵으로 손상된 폐를 더욱 악화시켜 결국 조각을 그만둔다. 

조각은 멈췄지만 그는 회화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조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가늘고 긴 얼굴, 기다란 목, 둥글게 내려오는 우아한 어깨선. 헛된 시간은 없다더니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화풍을 찾았다. 

 

"그의 예술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한 결과물이다. 작업할 땐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고,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데생을 계속했는데, 이미 그린 것을 수정하는 법도 없고 한순간도 생각하느라 멈추는 법도 없었다. 곁에서 보기에 완전히 본능적인 확신과 넘치는 감수성으로 작업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이탈리아적인 기질과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애착이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조각가 자크 립시츠)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

1917년 몽파르나스 카페에서 33세의 모딜리아니는 러시아 조각가 차나 오를로프의 소개로 화가 지망생 19세 잔 에뷔테른(1898~1920)을 만났다. 잔은 열세 살에 그린 그림이 소설 <기아와 비탄의 날들>에 삽화로 쓰일 만큼 그림 시력이 좋았고, 이후 디자인 공부를 하며 옷과 장신구를 직접 만들어 착용할 정도로 예술적 감각도 뛰어났다. 

잔은 중산층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런 그녀의 가족이 술과 마약에 찌들어 방탕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화가와 교제를 허락할 리 없다. 가족의 반대에도 둘은 동거에 들어간다. 그의 작업실은 신혼집이 되었다. 둘은 서로의 모습을 그리며 사랑을 나누고 예술적 유대감을 공유한다. 

 

1cc2e762ddcf5dba71006e8859e79c8c_1543877
▲  모딜리아니 초상화(잔 에뷔테른, 1919, 개인소장), 잔 에뷔테른 초상화(모딜리아니, 1917~1918, 개인소장) 

왼쪽 그림은 잔이 그린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다. 도상학적으로 턱을 괴는 자세는 멜랑콜리를 의미한다. 단정한 옷차림, 잘생긴 얼굴, 우울한 사색에 빠진 모딜리아니. 그녀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다. 

오른쪽은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화다. 왜 눈동자가 없는지 묻는 잔의 질문에 "당신의 영혼을 다 알고 난 후에 눈동자를 그리겠소"라고 답했다는 모딜리아니. 아마도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땐 그녀의 영혼을 보았나 보다. 

하지만 이후의 작품에 다시 눈동자가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를 알 것 같은 날도, 전혀 알 수 없는 날도 있었을 테니, 그는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대로 표현했다. 놀라운 건 눈동자가 없는 눈이 그 영혼의 깊이가 더 느껴진다는 점이다. 

땔감을 살 돈조차 없었지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 해에 모딜리아니는 생애 첫 전시를 여는데, 그가 그린 누드화 몇 점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게 돼 전시는 서둘러 문을 닫고 만다. 허무하게도 그의 첫 전시는 마지막 전시가 되어버렸다. 

 

1cc2e762ddcf5dba71006e8859e79c8c_1543877
▲  2018년 5월 미국 소더비 경매에 올랐던 '누워 있는 누드' 

시간이 흘러 2015년,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받았던 그의 작품 중 하나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040만 달러(한화 약 1923억 원)에 낙찰됐다. 2015년 판매 당시 세계 미술품 경매 사상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생이별을 하고 쓸쓸히 죽어야 했던 그를 떠올리면 인생이란 참...

 

아빠를 기록한 딸 

전시가 망하면서 그는 크게 휘청거렸다. 그런 그를 간신히 지탱해주는 건 잔이다. 다음 해에 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다. 건강이 나빠진 그를 위해 따뜻한 남부 니스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 그는 그녀와 동네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거장이 된 르누아르(당시 니스에 거주함)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로 예술적 취향이 다른 관계로 분위기는 서먹했으나 가난한 그를 위해 르누아르가 경제적 지원을 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둘은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너무나 가난해서 빵 한 조각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잔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고통의 겨울을 견딜 수 없어 결국 친정집으로 들어간다. 친정에서 그녀를 받아주었지만 그를 받아 주진 않았다. 그녀와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굳게 닫힌 그녀의 집 앞에서 속수무책 기다린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움과 무력감에 그는 점점 무너졌다. 

1920년 1월 24일, 그는 그녀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의 동료들이, 가족들이 그의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을 때 잔은 그곳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자신의 6층 방 창문을 열고 아래로 투신한다. 22살의 젊은 영혼은 배 속의 아이와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1cc2e762ddcf5dba71006e8859e79c8c_1543877
▲  자살(잔 에뷔테른, 1920, 개인소장) 

'자살'은 그녀가 죽기 직전 그린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녀는 그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예감했나 보다. 그의 죽음을 감당하기 어려운 그녀는 자신의 자살을 예고하는 그림을 그렸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의 이런 행동을 감히 비난하지도,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하겠다. 

둘의 장례식은 각각 다른 곳에서 치러졌고, 서로 다른 곳에 묻혔다. 10년이 흐른 뒤 모딜리아니 가족과 지인들의 간청에 그녀 가족도 마음을 풀고 그녀를 그의 곁으로 데려온다.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 그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출생,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사망. 막 영광을 움켜쥐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잔 에뷔테른. 1898년 4월 6일 파리에서 출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사망. 목숨까지 바친 헌신적인 동반자. 

 

딸 지오바나는 모딜리아니의 누나가 키웠다. 누나는 화가로 불행히 살다간 동생의 인생을 지오바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를 알지 못하고 자란 그녀는 나중에 부모에 대해 알게 되고 미술사가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모아 <모딜리아니, 인간과 신화>(1959)을 펴낸다.

 

[출처: 오마이뉴스]